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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공보의] 요즘 사는 이야기. 20.05.08.

by 별의사★ 2020. 5. 8.

 4월 초 지소에서 보건소 진료실로 옮겨온 이 후 나름대로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이전에 타의원에서 페이닥터로 근무 당시에도 수없이 봐왔던 환자들이지만, 한 1년정도 지소에서 유유자적 감기약만 내면서 지내다보니 머리가 텅텅 비어버린 듯 하다.

 부랴부랴 기본적인 가이드라인, 치료지침들을 공부하고, 약 목록들을 참고하여 나만의 진료실 세팅을 갖추고 나니 조금 여유가 생겨 이렇게 근황보고 겸 글을 남기게 됐다.

 사실 각 보건소들마다 운영방식이 다르다보니 좋고나쁨을 따지기 어렵다지만 내가 근무하는 보건소는 업무로딩이 많고 연/병가, 휴가 사용의 제약이 있다보니, 공보의들이 일차적으로 선호하는 지역은 아니다. 그래서 항상 신규공보의 중 한명이 보건소 진료실로 오고, 1년이 지나면 바로 지소로 점프를 하게 된다(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절대로!).
 그렇다보니 아무리 처음 배치당시 보건소장님과 진료실 1년 근무약속을 했다고 해도, 2년차 때 보건소 진료실로 오고 전역 때까지 이 곳에서 근무하겠다고 밝힌 나를 얼마나 이상하게 생각할까.

 내 스스로는 지소에서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다 보건소 와서 내 능력껏 진료를 보고, 검사를 하고, 약을 처방하는 것에 대해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환자분들이 많지 않다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답하는 것에 대해서도 재미를 얻고 있고.

 그리고 기본적으로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되어야지, 라는 다짐을 끊임없이 되새기게 된다.

 - 이전의 기록을 참고하되, '나와 환자의 관계'를 새로이 놓고 직접 내가 접하고 평가할 것.
 - 내 능력의 한계에 대해 정확하게 깨닫고, 그 이상의 진료/처치로 환자를 대하지 말 것.
 - 현재의 불편함에 대해 치료를 못해드려도, 들어주고 공감해줄 것.


1. 전임자는 '정보 공유'의 목적으로 기록해놓은 여러 사항들을 먼저 접하게 되면 그 틀에 박혀 환자를 보게 되는 것 같다.
  "민원을 자주 넣는 분이니 되도록이면 약을 그대로 주세요" 기록된 분과 진료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면,
본인 스스로도 약이 너무 많거나 종류가 다양하여 줄이고 싶으나 오는 공보의선생님들마다 그대로 처방을 해준다고 속상한 마음을 표현하신다.
몇번 그러다보니 본인 스스로도 포기하고 그대로 약만 가져가게 됐다는 이야기에 현재 먹고있는 약 종류에 대해 설명 후 중복되거나, 현재 호전된 증상에 대한 약을 정리해드렸더니 고마워하셨다.
 며칠이 지나 우연히 소장님과 커피를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그 민원인이 소장님께 연락하여 진료실 의사가 친절하다고 칭찬을 하셨다고 하여 많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2. 임상병리사 출신으로 면허번호, 전문의 유무를 따지는 분이며 폭언/욕설을 서슴치 않고 내뱉는 분이라고 인계가 되어 있는 분을 처음 진료실에서 만났을 때.

 보자마자 본인이 교통사고로 입원을 했었는데, 그 병원이 돌팔이다. 제대로 못본다고 하며 수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면서 잘못 알고 계신 건 정정해드리고, 나도 잘 모르는 상황에 대해서는
 '아마 어떠한 이유로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혹시 나중에 그 병원 가실 일이 있으면 이렇게 문의해보세요.' 라고 알려드렸었다.
 원래 당뇨 지병이 있으나 3제 Full dose로도 혈당조절이 전혀되지 않아 HbA1c 를 check 하였고 그 결과 8.7%가 나왔다.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슐린 도입에 대해 설명드리고, 인슐린에 대해 거부감이 든다면 4제로 처방(이 경우 한가지 약제는 전액본인부담으로 처리된다.)하여 혈당강하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으나 많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고, Cr 수치가 높아 약제 용량조절 등 감안하면 인슐린을 도입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본인에게 이렇게 설명해준 의사는 처음이라며 여기서 인슐린 치료를 받겠다고 하시길래... 인슐린 단위용량이 정해지고 수치가 안정적이라면 제가 주는 것이 낫겠지만, 콩팥에 대한 평가 및 용량 조절 등을 고려하면 내과전문의 진료를 보는 게 낫겠다고 설명드리고 진료의뢰서를 써드리는 걸로 마무리지었다.

 

 사실 환자수에 따라 급여가 차이나는 것도 아니고, 성과급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내 진료범위 이상으로 노력할 필요는 없다. 읍내 의원이나 여기나 처방해주는 약은 똑같을 것이고, 그리고 보건소는 바로 오는 차편이 없다보니 어르신들이 오기 좋은 환경은 아니니.. 읍내 의원을 가시게 안내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종종 있었다.

 다만 그렇게 힘들게 오신 걸 알기에 여기 오면 말 한마디라도 더 들어주려고 하고, 검사나 드시는 약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려드리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고마워하시고 환자를 잘 본다고 칭찬해주시면 더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 일종의 '선한 영향력'이랄까.

 주절주절 쓰다보니 원래 하려던 이야기와는 많이 멀어지긴 했지만, 그 또한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는 묘미 아니겠는가.
결론은 "나 열심히 잘 살고 있어요. 칭찬 많이 듣고 있어요." 인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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