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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선별진료소 휴일근무

by 별의사★ 2020. 3. 29.

 화창한 일요일, 오늘도 선별진료소 근무를 서게 됐다.
3년차 선생님들이 전역을 앞두고 로테이션에서 제외되고 2명은 대구 파견 후 자가격리, 2명은 현재 대구 파견.
상황이 이렇다보니 적어도 일주일에 1번은 근무를 서게 되는 것 같다.

 오늘도 날씨가 정말 좋구나.

 참 아이러니하게도 직원들과 나는 보호복이나 보호장비를 갖춰입고 보건소내 대기하고 있지만, 바로 앞 영산강 물줄기를 따라 펼쳐진 산책로에는 수많은 나들이객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나와 같지만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한 이런 괴리감. 심지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꽤 보인다.

 너무 공포감에 사로잡혀 지내는 것도 좋지 않지만, 최소한의 사회적 거리두기. 외출자제. 등은 지켜지길 바라는 입장에선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든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 지키고 있지만)
아빠가 주말마다 출근을 하다보니,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다보니 집 앞 놀이터도 가지 못하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각 지자체에서 외국 입국자에 대한 검역강화를 지시하면서, 지난주 토요일 근무와 달리 검체 채취 대상자가 많이 늘어났다.
(어제 근무섰던 공보의 선생님은 8명 채취했다고 하더라...)

 대상자는 늘어나는데 보호복 등 장비는 넉넉하지 않다보니 매뉴얼대로 따르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현재 레벨D 보호복 위에 비닐앞치마를 추가로 입고 검체채취 후 비닐앞치마와 글러브는 폐기. 레벨D보호복과 고글은 소독제로 소독 후 다시 입는 식으로 재활용 중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공협 측에서 페이스쉴드를 지원해줘서 그걸로 추가적인 보호를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검체 채취를 하거나 보호복 착,탈의에 더욱 조심할 수 밖에 없게 되고, 스트레스 및 피로도가 더욱 가중되는 것 같다.

나 대신 광합성 중인 레벨D 보호복.

오늘 검체 채취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미국에서 입국한 아저씨가 검체 채취가 끝나자, 그래도 본인의 검체를 채취한 것이니 결과가 나오면 레포트를 받아보고 싶다고...
 - 이게 건강검진도 아니고, 본인 1명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몇천명씩 검사를 돌리는데 어떻게 일일히 레포트를 보내드리겠냐.. 결과가 나오면 저희측에서 연락을 드릴꺼다. 라고 안내하는 식으로 마무리를 짓긴 했다만... 허허... 그저 웃지요^ㅡ^

 그리고 오후에 다녀온 이동채취. 가는데는 10분이 걸렸지만, 채취 후 보건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20분 넘게 걸렸다는 건 안비밀.
차들이 진짜 많구나. 날이 좋아서 그런가. 나도 와이프랑 애들 데리고 바람쐬러 가고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번외로 점심식사를 하던 중 주사님들끼리 이야기 하는걸 듣다가 조금 어이없었던 사례.
 - 27일부터 미국발 입국자에 대한 검역강화가 내려졌고 본인은 26일자에 입국을 했으니 괜찮다면서 자가격리를 안하겠다고 해 사정사정해서 자가격리를 부탁했단다..


 점심식사를 하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집단 지성은 선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믿고싶은 사람인지라 ‘일부의 사례를 가지고 전체를 왜곡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며 이렇게 블로그 포스팅을 남겨본다.

덧. 자주가는 인터넷커뮤니티에 해당 내용의 글을 올렸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응원과 격려를 받았다. 더욱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https//bit.ly/3bEJY89
덧덧. 그 글의 댓글 중 기억에 남는 내용. ‘적자생존...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 앞으로는 좀 더 자주 기록하고 남기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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