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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구충제 항암효과 준비하던 국립암센터 '취소하기로'

by 별의사★ 2020. 1. 9.

보건복지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인 국립암센터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개 구충제를 포함해 구충제의 항암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임상시험을 추진했으나 준비단계에서 효과가 없다고 판단해 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김흥태 국립암센터 임상시험센터장은 "사회적 요구도가 높아 국립암센터 연구자들이 모여 임상시험을 진행할 필요가 있는지를 2주간 검토했다""근거나 자료가 너무 없어서 안 하기로 했다. 보도자료까지 준비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물이나 세포 단위로 진행됐던 연구 논문과 유튜브에서 인용된 자료들을 모아 임상시험 타당성 여부를 검토했다. 그 결과 동물 수준에서도 안정성이나 효과가 검증된 자료가 없다고 최종 판단했다. 김 센터장은 "유튜브에서 제일 괜찮다며 많이 인용된 논문도 검토해 봤는데 이것조차도 허접했다"고 말했다.

 그는 "펜벤다졸은 암세포의 골격을 만드는 세포내 기관을 억제해 암세포를 죽이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용도의 항암제는 이미 90년대에 1세대 세포 독성 항암제로 만들어졌다. 2020년 현재는 1세대 항암제에 더해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 등 3세대 항암제까지 쓰는 시대"라며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게 아니라 효과가 없다고 봐도 된다"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의사나 전문가, 정부 관계자, 환자가 같이 참여하는 공론장을 언론사와 보건복지부가 같이 열어서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환자와 그 환자의 주치의가 진료 기록을 객관적으로 공개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기사 출처 : https://news.v.daum.net/v/20200109050050530

 

 해당 기사를 읽고 나서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부터 유튜브 등 인터넷커뮤니티에 이르기까지 "해당 결과를 이해한다. 당연한 논리다." 라고 말하는 이들과, ''정부의 선동이다. 돈이 안되기 때문에 만병통치약을 숨기고 있다. 그들의 무능을 드러내기 싫어서 그렇다." 라며 이 결과를 믿지 않는 이들이 다투고 있다.

 한가지 주제에 대해 이성과 감성의 논리가 모두 공존하니, 한가지 해답으로 정리되지 못하는 것 같다.

 필자도 의료인으로서 이성의 편에 서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지만 과연 내 가족, 친구, 주변 지인이 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필자 또한 이성의 논리로만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을까?

 필자는 아직까진 국립암센터의 결론에 동감한다. 다만 이 결과에 대해 워딩 자체가 매끄럽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치가 없다" 라는 단정적인 표현보다 좀 더 완화적인 표현을 어땠을까?
 물론 과학의 영역에서 모든 건 이성적이여야 하고, 냉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가 감성의 영역에 같이 포함되어 있는 만큼 "당장은 시험을 시작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추가로 다른 결과나 보고가 있다면 재고해 보겠다." 등의 표현이 낫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아마 국립암센터에서도 여러 경로와 방법으로 증례, 데이터 분석 등을 했을 것이고 그 결과 "시험을 할 가치가 없으며, 그들이 말하는 자료 또한 허접하다" (국립암센터의 워딩에 따르면) 고 했을 것이다. 그 내면에는 자료가 부실하거나, 완성도가 떨어진 시험이거나, 혹은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았거나, 결과가 효과가 없었거나, 환자의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거나 등의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안전성"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세계대전 때 일본군, 독일군이 행했던 생체'실'험과 차이를 두기 위해, 우리는 임상'실'험이 아니라 임상'시'험이라 부른다. 즉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환자, 피시험자의 안전인 것이다.

 동물 수준의 시험에서 안정성이나 효과가 입증된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근거나 자료가 없으니 사람한테 시험을 해보자!' 로 오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세포/동물 단위에서조차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 실제 인간, 즉 임상에서 그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인간에게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진행할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100명, 1000명 중 1명이라도 효과가 있었다면 그에 대해서라도 시도를 해야된다고 말한다.(그러나 그 정도의 효과라면 그건 약으로의 효과가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 그렇다면 가치가 없고 위험하다는 것을 시험을 통해 밝혀내달라고 한다.(여기에 대해서는 하고싶은 이야기가 참 많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시험에는 그에 따른 비용과 시간, 인력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항상 우리는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한다. 조금 더 확실한 치료나 가능성 있는 곳에 비용과 인력, 시간을 들이기 위해 좀 더 낮은 가능성의 연구를 뒤로 미루는 것.
 물론 시간이 지나 먼 훗날 그 선택이 잘못됐을 수 있지만,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기에 현재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해야되지 않을까.

https://bit.ly/2FDMflH (이미지 출처)


 여담으로...

 어떠한 치료도 듣지 않는 말기의 암환자가 있다.
 환자 및 모든 보호자가 동의했으며, 나라에서도 법적으로 문제삼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그 환자에게 "실험"적으로 이 약, 저 약 한번 다 써보라고 했을 때, 어느 의사가 그 약을 쓸 것인가? 나는 그 약을 쓸 수 있을까?

 필자가 의학에 몸담아 공부하고 병원에서 동료의사들과 함께 환자를 보면서 경험한 바로는, 그런 상황에서라도 흔쾌히 "제가 하겠습니다!" 하는 의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어디나 예외는 있다. 100% 완벽한 건 없지않나...)

 환자가 죽었을 때, 내가 사용한 약으로 인해 그 환자의 죽음이 앞당겨지지 않았다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 그 죽음에서 나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법적인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해도 내 영혼, 내 양심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있을까?

 아직 의사로 지낸 날보다, 의사로 지낼 날이 많은 나에게 오늘 이 주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이 나라에서 의사로 지낸다는 것에 대해, 현재 의학/전문가라는 위치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의료계를 바라보는 의식의 개선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오늘 이 진료실에서 나를 거쳐간 이들로 하여금 조금 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그 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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